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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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준의 경험으로 만약 약자가 강자가 되려면 진짜로 죽일 마음을 품는 방법뿐이었다. 정말 죽일 생각이라면 잠든 사람을 덮치거나 숨어 있다가 찔러버려야 한다. 상대에세 사연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한풀이를 한다든가 자기의 복수에 취해서 단죄에 앞서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다가 뒤에서 총을 맞는 장면은 영화에 흔하게 나온다. 몇 초 후면 죽을 인간이 그간의 사정이나 자기를 죽이는 놈의 심경에 대해 알아서 뭐 하겠으며 또 그걸 알아주기를 바란 나머지 어서 사건을 종결시키고 도망쳐야 하는 급박한 순간에까지 멋진 단어를 선택해가면서 시간을 끄는 건 무슨 바보 짓인가. 하지만 시퀀스를 통해 충분히 앞뒤 문맥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 '그 동안의 줄거리'를 설명해야 하는 솜씨 부족한 영화는 빼더라도 그런 장면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 것이 죽임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마음이기 때문이다. 혹은 최후의 순간에는 모든 비밀의 짐에서 벗어나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준 역시 자기가 죽이고 싶어했던 인간의 머리에 총구를 대는 순간 아무리 짧게라도 감회에 젖어 입을 열고 싶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무나 '내추럴 본 킬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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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사소한 감동에 의해 천성이 바뀌거나 초능력이 생겨날 수는 없었다. 시기를 놓친 영우는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가 없었거니와 국어책을 줄줄 읽는 다른 아이들 옆에서 더듬더듬 단어를 연습하는 게 흥미가 아니라 체면에 관게된 문제일 만큼 성숙해 있었다. 기본적인 것만 습득하고 나면 더이상의 단계로 진입할 의욕을 갖는 대신 벌써 싫증을 냈다. 그 너머 단계까지 가야한다는 필연성을 수긍하지도 않았으며 강박을 느끼지도 않았다. 힘들이지 않고도 비슷한 효과를 얻는 방법을 너무 빨리 발견할 수 있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우의 영리함은 체계적인 학습을 통하지 않고 부분만을 일별함으로써 문제의 반 정도는 맞히는 요령을 익히게 해주는 한편 공부를 제대로 잘할 기회를 영원히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태권도 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범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제법 흥미를 붙인다 싶었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어미니 표현으로는 시건방짐 때문이었다. 모든 일에 영우는 원리보다는 사용법부터 알려고 들었고 한번 사용해본 뒤부터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었던 기초단계의 작동결과만 갖고 그것이 대단찮다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런 일 또한 영우가 많은 일을 욕심껏 시작만 해놓고 끈기가 모자라 끝장을 보는 법이 없으며 쉬운 방법으로 결과만을 얻으려는, 성공확률 낮은 요령주의자라는 감정적 평가로써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아버지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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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고지식하고 모범적인 태도가 언제나 좋은 결과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었따. 그것밖에 잘하는 것이 없는 사람의 분노를 사거나 탐욕스러운 공명심으로 오해받아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영준의 경우 두 가지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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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반항하는 사람보다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은 더 위험한 거잖아요, 더 비극적이고. 제가 그렇거든요. 인간은 시간이 되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유한한 존재고,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요. 선택은 두 가지뿐이죠. 혼자만의 곳으로 떠나버리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주변인으로 떠돌거나. 저는 떠나지 못하고 공허하게 떠도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함부로 사는 동생보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언니의 인생이 더 비극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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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준을 전통 있는 K국민학교에 남도록 하기 위해 신설K남국민학교로 보내졌던 어린 시절부터 영우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란 거의 없었다. 영우가 자신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살아갈 날이 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은 그러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대신 영우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영우가 자기 인생에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었다. 자신을 함부로 방치하는 것이 자기 인생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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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영준은 운동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다거나 노래를 부른다거나 공작을 하는 데에도 취미가 없었고 수집도 소풍도 어떤 아이다운 놀이도 즐기지 않았다. 일찍부터 책이 쥐여졌으므로 다른 즐거움을 습득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영준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듯 학습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실망시켰을 경우 영준은 꾸중을 두려워하기 앞서 스스로 수치심을 느끼도록 교육받았다. 주목을 받는 사람에게 선망은 따르지만 자유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에게조차 자유로워질 수 없다. 타인의 시선에 길든 사람은 자신을 틀에 가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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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아무것에도 집착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유는 한 가지이다. 자기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하도록 되어 있어서 해왔던 모든 일들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다놓았는지 영준은 똑똑히 보고 있었다. 만약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암 환자가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조금 후 의사에게 어떻게 질문을 할 것인지 연습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우습고도 끔찍한 인생인가. 비탄에 빠져 몸부림을 쳐도 부족한 마당에 조리 있고 교양 있는 환자라는 평판을 얻어 주위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면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유일하고 절박한 관심사인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울부짖는 것이 바로 그거 원하는 진정한 언어일 것이며 아무도 그런 무분별해질 수 있는 권리를 비난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준은 갑자기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해도 구조를 요청하는 방법을 찾기에 앞서, 공포에 질린 자신의 추한 모습이 카메라에 남지 않았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여자와 자는 일에도 몸이 청결하고 주변이 조용하고 시간이 충분하다는 식으로 스스로가 준비된 상황에서만 뇌가 충동을 발산했다. 남의 관심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또한 자신이 그들의 기대를 감당하지 못하면 모두가 떠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그 기대를 끔찍하게 부담스러워했다. 한마디로 불우한 모법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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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닥치든 영준은 훈련된 지력과 책임감에 의해 평균적인 수준까지 감당을 해낼 뿐 열정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무기력했고 때로는 내동댕이치고 싶을 만큼 자기의 존재가 혐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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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준의 오피스텔가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입구의 데스크에 앉아 졸고 있던 경비원이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멎는 소리에 힐끔 눈을 뜨더니 형식적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영준은 인사를 받지 않았다. 얼굴을 익히면 마주칠 때마다 알은척을 해야 하고 드나드는 것이 의식되어 자유롭지 못했다. 술집이든 이발소든 영준은 단골을 싫어했다. 되도록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고 주의하지만 그래도 알아보고 반긴다거나 서비스 안주를 내오는 집은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익숙함과 편함 같은 안락한 기분이란 혼자 있을 때 집에서 누리는 것이지 밖에 나가서 구하고 다닐일은 아니었다. 자기 연출을 강요하는 남의 시선이란 피곤할 뿐이었다. 친화력도 갖지 못했고 남을 배려하는 천성도 아니었으므로 영준은 익숙한 사람이 아니고는 밥 한 끼 같이 먹기가 거북했다. 우연히 아는 사람과 마주쳐도 제 편에서 먼저 인사하는 법이 없었다. 살인강도의 침입을 받아 신원불명으로 죽는 한이 잇더라도 영준은 익명을 원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죽음을 간절히 바라던 때가 있었다. 불면의 밤을 저주하며 혼자 싸늘한 침대에서 뒤척이던 어떤 젊은 날 영준에게는 누군가 문을 부수고 들어와 자신을 죽여주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처럼 여겨졌었다. 그때에는 어떤 단련과 무장으로도 고독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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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위인이란 존재는 철인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으로서의 긍지를 주어 인간을 고양시킨다. 반면 약점투성이인 사람은 떄로 인간을 안심시키며 자신과 화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알리바이가 지나치게 완벽한 용의자에게 의심을 품는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어긋남도 없이 앞뒤가 딱 들어맞는 것은 거짓말이기 쉽다. 완벽한 미모라면 성형미인일지도 모르고 기승전결이 완전한 스토리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기 떄문이다. 영준은 다시 한번 머리를 욕조 속에 깊이 담갔고 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꺼내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진실이란 대게 추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밀이나 거짓말은 나약한 존재인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수단이다. 진실이라는 공의(公義)에 의해 쫓겨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도달하여 몸을 숨기는 막다른 골목의 어둠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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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혼자 있을 때야말로 자기 속에 있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을 하나하나 분명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끝에 이르면 거기에는 슬픔이 있는 것이다. 기쁨과 증오, 분노, 사랑, 모든 감정의 극단에 이르러 인간이 결국 슬퍼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슬픔이란 인간이 자기 존재의 유한함을 자각하는 짧은 순간을 뜻하는 건지도 모른다. 유하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최후로 닿을 수 있는 감정의 경계에 부딪쳐 얻는 고통이 바로 슬픔이다. 경계너머에는 아마 무한의 세계, 그러니까 허무가 존재할 것이다. 시작도 종말도 없으며 모든 것은 무의미하게 지속된다. 만약 누군가 슬픔의 경계에 도달해 허무를 엿보았다면 그는 인생에 대해 담담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한순간 마음속에 머물렀던 허무의 기억이 각자의 인생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지도 모른다고 영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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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들이 왜 늙어서까지 부모를 찾으려 한다고 생각해요? 글쎄요, 자기가 누군지 알려고? 알면 뭐가 달라지죠? 안심이 되는 거 아닐까요.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그런 모순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에 질서를 부여한다고 할까, 자신이 이런 사람이다 하고 해석해놓으면 안심이 되잖아요. 잠을 옆으로 누워 자는 버릇은 아버지한테 왔고 기관지가 약한 것은 어머니 닮았고, 그런 식이면 어쩐지 모든 게 좀 덜 두렵지 않은가요? 제 동생이 지키고 싶어한 자기의 정체도 어쩌면 그런 거겠죠? 사람은 누구나 약하 존재이니까요. 그래요. 코끝이 빨개진 남자는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개를 젖힌다. 자기가 누군지 알기 위해 헤매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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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은 이따금 생각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비밀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과연 모두가 진실일까. 어쩌면 객관적 진실보다 그렇게 믿도록 만들어진 진실이 더 진실할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면 그럴 만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