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 빈센트 반 고흐, 반고흐 영혼의 편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예담
44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50
너는 내가 화가가 된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겠지.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그런 후회를 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충실한 훈련은 게을리 한 채 승리자가 되려고 허겁지겁 달려왔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오직 그 하루만 사는 사람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해부학, 원근과 비례 등에 대한 공부를 즐겁게 할 정도로 그림에 신념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계속 노력할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기 세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91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따.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네가 들려준 사람들의 삶이 엄한 규칙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문제는 추상적인 생각이 아니라 행동에 있다. 규칙은 지켜졌을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고 가치가 있다. 깊이 생각하고 늘 신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까닭은, 그런 자세가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고 다양한 행동을 하나의 목표로 모아주기 때문이다. 네가 말한 사람들도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더 분명한 생각을 가졌더라면 의연하게 일했을 것이다.
107
너는 아직도 네가 평범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떄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서 너는 왜 네 영혼 속에 있는 최상의 가치를 죽여 없애려는 거냐? 그렇게 한다면, 네가 겁내는 일이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115
의욕적으로 일하려면 실수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흔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훌륭하게 될 거라고 하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너도 그런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했잖아. 그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침체와 평범함을 숨기려고 한다.
사람을 바보처럼 노려보는 텅 빈 캔버스를 마주할 때면, 그 위에 무엇이든 그려야 한다. 너는 텅 빈 캔버스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모를 것이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55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길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어떤 것임을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중략)
나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비뚤어지고 적의에 차서 성을 잘 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할 때라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약국에서 파는 약보다 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발전하게 돼 있다.
그러니 너무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아라.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랑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라. 그건 주로 기질의 문제라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85
그림 한 점을 완성해서 돌아온 날이면, 이런 식으로 매일 계속하면 잘될거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반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먹고 자고 돈을 쓰는 날이면, 내 자신이 못마땅하고 미친놈이나 형편없는 망나니, 혹은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0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98
가족이나 조국은 현실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매력적인지 모른다. 우리는 가족뿐 아니라 조국에서도 떠난 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으니.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항상 어떤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나그네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 '목적지'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아주 소맂ㄱ하게 들리겠지.
206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고갱을 봐도 알 수 있듯 완성한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니.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얼마 안 되는 금액을 빌리지도 못하다니.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담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특히 모든 것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256
이제는 살아가는 데 대한 공포도 한결 덜해졌고 우울한 기분 역시 약해졌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런 의지나 욕망도, 일상적인 생활에 속하는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전혀 생기질 않는다. 예를 들어 내 친구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구나. 계속 그들을 생각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이다. 어디에 가더라도 이런 의기소침함은 따라올 테니까. 최근 며칠 동안에 삶에 대한 나의 혐오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긴 했지만 그것이 의지와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아직도 더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261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고, 반감 없이 고통을 직시하는 법을 배우려다보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건 간으한 일이며, 심지어 그 과정에서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면 삶의 다른 측면에서 고통이 존재해야 할 훌륭한 이유를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 고통의 순간에 바라보면 마치 고통이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끝없이 밀려와 몹시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에 대해, 그 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게 그림 속의 것이라 할지라도.
272
삶은 이런식으로 지나가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일할 수 있는 기회도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난다면 그림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