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책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다윈은 그걸 적자 생존이라 불렀고, 아담 스미스는 시장이라고 불렀고, 군대에서 그걸 적응과 개념이라고 불렀으며, 사회에서는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

Kate.J 2014. 6. 18. 19:51


컨설턴트 

임성순

은행나무 



12

불운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를 한창의 나이에 백수로 만든 회사였을까, 도망간 부인이었을까, 아니면 전세금 사기를 친 부동산 업자였을까, 함부로 주먹을 휘둘렀던 아들이었을까, 혹은 합의해주지 않았던 피해자일까. 어쩌면 그의 절박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고 무작정 구치소에 감금했던 경찰 탓일 수도 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 불행의 연쇄작용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따. 경찰은 공무를 법대로 행했을 뿐이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의 아들은 갑자기 닥쳐온 가족의 불행에 대한 절망감을 폭력이란 형태로 표출했을 뿐이며, 부인은 지난 18년간 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 생활에 실직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최대한 자신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렸을 뿐이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그가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부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합리적이었다. 다들 아담스미스의 추종자라 할 만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부린 작은 심술. 그의 불행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게 회사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걷는 운명이다. 중산층이라고 목에 힘을 주는 사람들조차 명함에 써 넣을 직함이 사라지면 세상의 광막함과 마주해야 한다. 비탈을 굴러 떨어지는 건 누구에게나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23

나는 죽음을 비극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로 만든다. 이게 내가 지닌 전문성이다. 원한다면 날 킬러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난 이 일을 구조조정이라고 부른다. 세상엔 많은 구조조정들이 있지만 그중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구조조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구조조정이 보다 좋고 합리적인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전문가로서 말하자면 실상은 이렇다.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뿐이다. 



37

다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군에서 배운 것은 그것이었으니까. 결코 남들보다 튀어서도, 그렇다고 처져서도 안 된다.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다윈은 그걸 적자생존이라 부렀고, 아담 스미스는 시장이라고 불렀고, 군대에서 그걸 적응과 개념이라고 불렀으며, 사회에서는 철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날 찾아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64

굳이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감추고 싶은 죽음이라면 산 자들이 알아서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만들 것이었따. 우리의 행동은 욕망에 따라 결정되고, 욕망이란 지향성을 지니고 있따. <마스터 오브 퍼펫>의 가사처럼. 욕망과 두려움을 안다면 조종은 어렵지 않다. 



113

니체의 경고처럼 심연에 들어가서 괴물이 되지 않고 그냥 나오는 법 따윈 없다. 



221

"마운틴 고릴라는 콩고의 열대우림에서 무리 지어 생활을 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들의 행동은 인간을 닮았습니다. 인간의 DNA 구조와 고작 2퍼센트 차이가 날 뿐이지요."

고릴라들은 아주 태연한 표정으로 서로의 털을 만져주고 있었따. 현경과 동물원에서 봤던 고릴라들과는 너무나 다른 표정이었다. 고릴라들은 삶은 단순하고 행복해 보였다. 고작 2퍼센트의 유전자 차이가 주는 삶의 명징함이 부러웠다. 예린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무 결론이 나지 않으리라. 나는 내가 결코하지 않을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정해놓은 내 삶에서, 회사의 그림자에서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으리라. 나는 마치 계시라도 기다리는 표정으로 소파에 파묻혀 TV를 노려보았다. 내가 결코 하지 않을 선택이, 이 삶을 벗어나는 탈출이 무엇일까. 그때 번뜩 무언가 떠올랐다. 

콩고에 가보는 거다. 

콩고에 가서 고릴라들을 보는 거다. 그 명징한 삶에 분명 어떤 답이 있으리라. 알고 있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었따. 하지만 이 순간 이러지 않고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의 일을 해보는 거야. 진심으로 달아나보는 거야. 

하지만 나는 내가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272

그녀에게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녀가 회사에서 준비한 것이라면 그녀는 완벽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 해도 그녀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며 나에게 귀여운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누구도 그걸로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의 선택을 평생 후회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현명한, 합리적인 선택이 지금의 나란 괴물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제 후회할 선택이 남긴 삶이 내게 무엇을 남겨주는지 볼 차례였다. 나는 내 죄의 무게로 고통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281

교회에 다니면서 또 의외로 날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꽤 합리적이며 계산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때 암기하듯 외웠던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이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말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그러니까 일주일 중 엿새를 실컷 죄를 짓고 살다가 일요일 날 가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회계하면 모든 죄는 사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절대자는 늘 사랑으로 넘치기에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다. 그리고 천국에 갈 수 있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죄는,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 죄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모르겠다. 하여간 내가 죽는 시간을 택할 수 있다면 일요일 오후를 고르고 싶다. 그렇다면 천국은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교회에서 배운 새로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의 핸드폰 때문에 죽었떤 수백만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기에 지옥에 간다는 것이었따. 다행히 내 머리에 총을 겨눴던 일행 중 하나는 천국에 갈지도 몰랐다. 영어에 능통했던 그 흑인은 교회에 다녔다. 우리 교회 전도사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을 더욱 더 보내서 그들도 천국에 가야 한다고. 그렇지만 내전을 일어켰던 장본인들은 그 선교사들에게 배운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그들 대부분은 교회의 돈으로 서구사회에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결국 천국도 우리 차지다. 하긴 그들에게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 내가 본 그곳은 이미 지옥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