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휘청휘청 넘어질 듯 흔들려야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게 됐는데, 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군가 다른 사람 손만 잡아도 휘청휘청 넘어질 듯 어지러워지더라. - 김연수, 사월의 미, 칠..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문학동네
29 벚꽃새해
"그게 그렇더라구. 어릴 때만 해도 인생이란 나만의 것만 남을 때까지 시간을 채로 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남는 게 하나도 없어. 다 남의 것이야. 내 건 하나도 없어."
43 깊은 밤, 기린의 말
하지만 그 지침과 달리 진단 초기 아빠는 전혀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빠는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사들이고, 창이 열리는 대로 인터넷 사이트를 읽었다. 곧 아빠에게는 조금의 지식이 생겼다. 아빠는 한국의 의사들은 토끼보다도 못한 겁쟁이들이어서 손톱만한 책임이라도 피하는 데에만 급급하며 한국의 병원은 시장 장사치들보다 못한 사기꾼들이 운영하기 땜누에 음식만 가려 먹어도 고칠 수 있는 환자들을 외래로 돌려 평생 약장수질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때 아빠에게는 막연하나마 가장 많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병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수록 아빠의 희망은 점점 더 줄어들고, 또 그만큼 단단해졌다. 여러 개 중 하나의 희망이라면 이뤄져도 그만, 안 이뤄져도 그만이겠지만, 거기 단 하나의 희망만 남는다면 그건 돌멩이처럼 구체적인 것이 되리라.
109 일기예보의 기법
눈만 보면 자동적으로 눈가래가 떠오르던 때라 골목에 쌓인 눈을 그냥 풍경으로 두고 보는 게 얼마나 인간적인지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눈 때문이겠지만,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휘청휘청 넘어질 듯 흔들려야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게 됐는데, 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군가 다른 사람 손만 잡아도 휘청휘청 넘어질 듯 어지러워지더라.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엄마가 그런 말씀을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살아보니 그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겠다.
159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나보다 800년이나 앞서 살았던 단테의 그 탄식은 내가 겪는 이 고통이 어쩌면 모든 인류의 삶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일 수 있따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 암 센터 건물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걸어가면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연세대학교 학생들로 북적이는 횡단보도가 나왔고, 거기 서 있노라면, 건강하고 젊은 그들에게 고통이란 다른 세상의 일들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젋고 건강했으나 지난 몇 년의 어느 순간에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러면서 나는 고통의 측면에서는 800년 전의 옛사람과 같아졌다. 말하자면 나는 단테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은 개별적인 고통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중언부언일 뿐이리라. 항암약물투여실 병상마다 안거나 누워 있던 모든 암환자들의 고통이 그렇듯, 나의 고통 역시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었디만, 또한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세상에 널린, 흔하디 흔한 고통이었다.
173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그제야 나는 볼펜을 쥐는 즉시 머릿속에서 줄줄 흘러나온 검은색 문장들이 아니라 쓰지 못하고 있는 빨간색 문장들을 써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나는 온몸에 남은 오감의 경험을 문장으로 표현해야 할 텐데, 그건 쉽게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아무리 잘 쓴 문장도 실제의 경험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작가의 고통이란 이 양자 사이의 괴리에서 비롯했다. 빨간색 볼펜을 손에 들고 괴로워하던 나는 그 고통이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경험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괴로운 것이다.
248 파주로
고등학생 때 신부님한테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였는데, 그간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그를 통해 다시 들으니 그 시절의 일들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던지 저마다 그 시절의 일화들을 두서없이 얘기했다. 그렇게 각자가 기억하는 신부님의 모습에 대해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니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저절로 생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함께 경험한다는 뜻이다.
271 인구가 나다
몇백만원짜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택시기사의 중학생 아들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된다는 게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현실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보지 못하는 건 그것뿐만 아니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는 소년이라면, 결국에는 신체적인 장애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그 어떤 장애도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장애가 아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의 장애물들은 거기 그대로 있었따. 그럼에도 그 장애물들이 점점 더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그의 아들이 점점 더 평범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술의 길에서 평범한 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자신이 뛰어넘으려던 그 장애물을 껴안고 나뒹굴고 만다.
인구는 일찌감치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인구에게 천국이 있었다면, 그건 초등학교 시절이리라. 그때는 모두들 인구가 모차르트라도 되는 양, 경이에 가득 찬 눈으로 그의 연주를 들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목표를 세우자마자 인구는 급속하게 평범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삶은 검은 입을 벌렸다. 그 이빨에 몇 번 물어뜯긴 뒤, 인구에게 남은 건 소심한 도피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인구에게 이 세상이란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같은 것이었다. 인구는 마음이 괴로울때면 옥상에 올라가 이런 생각을 했다. 4층밖에 안 되지만, 뛰어내린다면 바로 죽겠지. 물론 나는 매번 안 죽고 내려가지만. 그러니까 여기는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곳. 그런데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처지다.
290 인구가 나다
무작정 기차에서 내리고 보니 거기가 크레모나였다는 그 말. 두 사람의 관계에 본질적인 건 애당초 없었다. 두 사람은 연못 위의 소금쟁이들처럼 인생의 표면 위를 각기 미끄러졌을 뿐이다. 서로가 얼마나 깊은 생활의 수심 위에 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미끄러지다가 서로 만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308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오늘 너 만나서 처음으로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코끼리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소리니까."
"그건 뭐, 마지막까지 이해하려는 사람들보다 아예 처음부터 오해한 사람들이 되려 잘된다는 소리니까, 뭐. 그게 희망적일까?"
"그게 희망적일까? 그게 희망적이야."
그기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날 밤의 산책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랜만에 마신 술로 완전히 취해버린 그는 콧물 눈물을 다 쏟아내며 울었다. 기러기들이 외치듯이. 친구의 품에 안겨서 꺼이꺼이. 그녀 때문이었다. 그와 그녀도 처음부터 서로 오해한다고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해한다고, 서로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했다니.